2026년 7월 8~9일 파리에서 열린 글로벌 AI 콘퍼런스 레이즈 서밋(Raise Summit) 2026에 한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가 나란히 참가했다. 구글 클라우드, AWS를 포함해 약 9,000명의 관계자와 350명의 연사가 모인 이 행사에서 두 회사가 강조한 키워드는 ‘소버린 AI(Sovereign AI)’다. 거대 클라우드·GPU 공급사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국 데이터·인프라로 AI를 운영하려는 유럽의 수요를 정조준한 것이다. 엔비디아 GPU 일변도였던 AI 추론 인프라 시장에 한국산 NPU가 어떤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이번 행사에서 나온 발표 내용을 정리한다.
레이즈 서밋에서 공개된 기술
리벨리온은 데이터센터용 1세대 NPU ‘아톰(ATOM)’을 앞세웠다. 삼성 파운드리 5나노 공정으로 제작된 이 칩은 네이버클라우드·카카오 등 국내 주요 사업자와 파일럿을 진행하며 검증을 거쳤고, 박성현 CEO는 이번 서밋에서 “AI 추론 인프라 전략”을 주제로 발표하며 엔비디아 GPU 대비 추론 단계에서의 전력 효율 개선을 강조했다.
퓨리오사AI는 2세대 추론 가속기 ‘RNGD’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소개했다. RNGD는 2024년 Hot Chips 콘퍼런스에서 메타 Llama 모델 기준 엔비디아 고성능 칩 대비 2배 이상의 전력 효율을 보인 바 있는 칩으로, 이번 서밋에서는 브로드컴과 협력해 2나노 공정으로 개발 중인 3세대 RNGD 로드맵도 함께 공개됐다.
소버린 AI란 무엇인가
소버린 AI는 데이터·모델·인프라·인력까지 AI 밸류체인 전 과정을 국가나 조직이 독립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개념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2024년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모든 국가가 자국 데이터로 자국 AI를 학습해야 한다”고 선언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UAE·일본·인도·프랑스·한국 등이 잇따라 조 단위 국가 AI 인프라 투자를 발표했다. 엔비디아의 2026 회계연도 소버린 AI 관련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 3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역설적인 지점은, 소버린 AI 흐름 자체는 엔비디아가 앞장서 만든 담론이지만 정작 각국이 ‘주권’을 확보하려는 대상에는 GPU 공급망 의존 자체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유럽 입장에서는 미국 빅테크의 LLM과 GPU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서비스 중단, 가격 인상, 수출 규제 같은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 지점이 리벨리온·퓨리오사AI 같은 대안 NPU 공급사에 기회로 작용한다.
유럽이 K-NPU에 주목하는 이유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메모리·파운드리 업체는 물론, Arm·Synopsys·Zeropoint Technologies 등 글로벌 반도체 IP 기업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유럽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 엔비디아 단일 공급망에 대한 리스크 분산 수요 — 특정 공급사에 종속되지 않는 대안 하드웨어 확보
- 추론 특화 설계에 따른 전력 효율 — 데이터센터 전력 제약이 심한 유럽에서 특히 매력적인 요소
관전 포인트
다만 하드웨어 스펙만으로 시장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엔비디아의 진짜 해자는 CUDA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생태계이며, 리벨리온·퓨리오사AI 모두 자체 SDK와 컴파일러 스택을 지속적으로 다듬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번 서밋에서 공개된 협력은 대부분 파일럿·PoC(개념 증명) 단계로, 유럽 데이터센터에 실제 대규모로 배치되기까지는 검증 기간이 더 필요하다. 3나노·2나노급 후속 칩의 양산 일정이 계획대로 지켜지는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마무리
이번 레이즈 서밋 참가는 한국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국내 파일럿 단계를 넘어 유럽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엔비디아 대안’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소버린 AI라는 담론이 계속 커지는 한, 특정 공급사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각국 정부·기업의 수요는 꾸준히 존재할 것이고, 그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리벨리온·퓨리오사AI를 포함한 K-NPU 업체들의 전략인 셈이다.